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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의 보물 
복음의 보물(1980년판) 복음의 보물(1980년판)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연구시리즈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연구시리즈 
믿음에 대한 정의를 내립니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E. J. 와그너 목사는 원래 직업이 의사이었으며 그의 아버지는 복음을 전하는 목사이었다. 그는 성경을 깊이 연구하는 학생이었는데 개인의 구원에 관한 깊은 고뇌에 빠지게 되었다.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를 깊이 고민하던 중 어떤 영적 집회에서 홀로 앉아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하늘이 열리며 예수님의 십자가가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고 그의 고백가운은 증언한다. 그 후 그는 십자가를 연구하게 되었으며 깊이 있는 성경 연구를 통해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얻는다는 놀라운 진리를 깨닫고 의사 직업을 버리고 복음을 전하는 목사로 헌신하게 되었다.
여기에 올리는 주석은 와그너의 로마서 강해를 번역한 것으로 매격월간 출간되는 진리의 기둥과 터에 시리즈로 연재되고 있다. 로마서 강해 (E. J. 와그너) 
 갈라디아서연구 
 히브리서 연구 (A. T. 존스) 
주옥같은 구원의 설교들을 모아 놓은 곳입니다. 구원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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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로마서 4장 1-15절) ModifyDelete


로마서 4장 1-15절
앞에서 설명한 원칙들을 연구한 후에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교리가 혹시 하나님의 율법을 격화시키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될지도 모르겠다. 의롭다 함을 받을 때에 율법을 앞세우게 된다. 오직 한가지 위험은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는데에 있다. 의롭다 함을 받을 때에 율법이 마음에 굳게 세워진다.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것은 율법이 사람의 마음에 들어와서 성육신이 되는 것을 말한다.
3장에서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의 원칙을 설명하였다. 4장에서는 아브라함을 실례로 들어 이 원칙을 자세히 밝히고 있다. 아브라함이 어떤 의를 가지고 있었다면 자랑할 것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랑할 것이 없었다. 그는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다(4:1-3). 만일 사람이 하늘의 인정을 받을 만한 행위를 할 수 있다면 그만큼 자랑할 것이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는 켤코 자랑할 수 없을 것이다(고전 1:27-29;렘9:23,24).
만일 사람이 의를 행할 수 있다면 하나님이 의의 상급을 주실 때에 그 사람은 자기의 행위로 얻은 것을 받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영생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의의 상급이다. 영생이 하나님의 선물이며 의가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에 영생은 의의 상급이 되는 것이다(4:4).
아브라함은 그의 믿음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다(4:5). 죄의 용서란 한낱 거래 대장 속의 과거의 기록을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에게 실제로 일어나는 변화이며 일시적인 행위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의를 인간에게 나누어 주시고 인간의 죄는 그분이 짊어지시며 죄가 있던 자리에 그분의 의로 채워주신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인간 안에 완전한 변화가 일어난다.
인간 스스로는 잠시라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수 있을만큼 선한 행위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바로 이 점에서 명목상의 그리스도인과 무신론자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 가운데서도 어느 날 행한 자신의 행위를 가지고 심판대 앞에 나아가서 심판을 청구하며 자기의 운명을 자신들의 행위에 맡기려는 무모한 사람들이 없을 것이다.
6-8절은 어떤 행위가 없이도 하나님의 입혀 주시는 의를 가진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사람이 하나님 안에서 행할 때에 그 행위를 주님께서 죄로 인정하시지 않는다. 그런 사람이 바로 복받은 사람이다.
먼저, 아브라함은 믿었기 때문에 의를 받았으며 다음에 그가 가진 믿음의 의를 인치기 위하여 할례의 표를 받았다(9-11절). 높은 신앙을 공언하는 사람들은 그 공언으로 그치지 말고 아브라함이 가졌던 믿음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한다(12절). 유대 민족의 시대에 하나님께서 살람들 간에 차별을 두셨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외모로 사람을 취하신 적이 없고 또 그렇게 하실 수도 없다. 유대인이 이방인과 멀어 진 것은 바로 자기들의 완고함과 자기 의의 정신 때문이었다. 그들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세움을 받았으나 이것을 거절하고 맛을 잃은 소금이 되었고 오히려 자신들이 소금으로 절여져야 할 정도로 되었다. 소금은 음식에 침투하여 들어가서 썩지 않도록 보존하는 역할을 한다. 이와같은 원칙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은 여러번 되풀이되기는 하였으나 줄곧 하나였다. 이 약속은 아브라함 안에서 땅의 모든 족속들이 복을 받고 아브라함은 세상의 후사가 될 것이라는 약속이었다(13절;창12:1-3). 복음은 유업을 보게 해 준다. 복은은 사망으로부터 구원을 받게 하고 생명을 가져다 준다. 생명을 준다는 사실은 더불어 하나의 거주할 곳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영원한 기업을 주는 것은 복음이 가져다 주는 전부라고 말할 수 있다.
성도들의 유업에 관하여 가르치는 교리는 곧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교리이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성도들의 유업을 전파할 때에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를 전하지 않는다면 복음을 전파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약속받은 유업은 우리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유업과 똑같은 것이지만 이 세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벧후3:4;행7:5).
이 유업은 율법을 통해서 주지 않고 믿음의 의를 통해서 주신다. 그러나 이 기업은 의로운 자들 다시 말하면 율법에 일치하는 자들에게만 주실 것이다. 그러나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후사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폐하여졌느니라.’(14절).
우리 자신의 노력으로 이 유업을 이룰 수 없을 뿐더러 유업을 이룰려고 시도할수록 유업에서 더욱 멀어질 뿐이다. 왜냐하면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15절). 만일 유업을 행위로 얻는다면 약속으로는 못 얻는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유업은 오로지 의인들을 위해서 있을 뿐이다. 의는 율법에 대한 순종이다. 다시 말하면 유업은 우리 자신의 순종의 행위에서 나지 않고 믿음으로 율법에 완전히 순종함으로 얻는다(3:21). 이것은 하나의 역설이다.
모든 복음은 인간의 이성과는 정반대이다. 오히려 복음은 이성을 무한히 초월한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합리적이시다. 그리스도는 유업을 약속하셨으며 그분의 약속에는 예와 아멘뿐이다. 그가 유업을 주실뿐만 아니라 유업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의도 주신다. 그러므로 생명과 의와 유업은 모두 하나님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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