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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의 보물 
복음의 보물(1980년판) 복음의 보물(1980년판)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연구시리즈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연구시리즈 
믿음에 대한 정의를 내립니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E. J. 와그너 목사는 원래 직업이 의사이었으며 그의 아버지는 복음을 전하는 목사이었다. 그는 성경을 깊이 연구하는 학생이었는데 개인의 구원에 관한 깊은 고뇌에 빠지게 되었다.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를 깊이 고민하던 중 어떤 영적 집회에서 홀로 앉아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하늘이 열리며 예수님의 십자가가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고 그의 고백가운은 증언한다. 그 후 그는 십자가를 연구하게 되었으며 깊이 있는 성경 연구를 통해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얻는다는 놀라운 진리를 깨닫고 의사 직업을 버리고 복음을 전하는 목사로 헌신하게 되었다.
여기에 올리는 주석은 와그너의 로마서 강해를 번역한 것으로 매격월간 출간되는 진리의 기둥과 터에 시리즈로 연재되고 있다. 로마서 강해 (E. J. 와그너) 
 갈라디아서연구 
 히브리서 연구 (A. T. 존스) 
주옥같은 구원의 설교들을 모아 놓은 곳입니다. 구원의 설교 
주님이 사랑하십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로마서 5장 1-5절) ModifyDelete


로마서 5장1-5절
로마서 5장은 4장에서 자세히 설명한 믿음의 열매가 되는 축복들을 일부 열거하고 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성장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5장의 기조를 이루고 있는 두 글자는 ‘더욱’이라는 말이다. 만일 우리가 5장에서나 또는 다른 곳에서 말하는 엉광이나 인내나 또는 그리스도인의 연단을 체험한다면 꼭 알아둘 것은 하나님은 그것들을 많이 쌓아두시고 우리에게 더욱 많이 주시기를 좋아하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엡3:20)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다른 말로 하면, 믿음으로 우리가 율법에 순종할 수 있는 자들이 되었으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우리가 율법에 순종하고 정죄를 받지 않는 생애를 사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다. 그리스도에게는 불의가 없고 의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그분의 의를 소유하게 된다.
그러나 야고보는 행위가 있지 않으면 믿음은 소용없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사실 믿음은 행위로 온전하게 된다(약2:22). 그러나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믿음, 오로지 믿음에 의해서만 된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다고 말하는 바로 그 구절에서 행위는 믿음의 생애의 당연한 열매에 불과하며 이런 행위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다고 말한다. 행위는 믿음에 따르는 당연한 결과이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3)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의 손에 맡기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와 함께 거처하신다. 우리는 토기장이의 손에 있는 진흙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모든 선한 행위를 행하시는 분은 그리스도이므로 모든 영광이 그에게 돌아간다.
‘화평을 누리자’ 무엇이 화평인가? 그것은 감정이 아니고 하나의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떤 감정을 경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평강’인 줄로 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하나님의 평강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그것이 어떤 종류의 감정이어야 한다는 것도 알 수 없다. 사단이 어떤 행복한 감정을 줄 수도 있다.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감정만을 경험한다면 속임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은 감정을 주지 않고 화평을 실제로 주신다. 화평은 전쟁, 투쟁, 경쟁과 반대되는 말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든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과 싸우고 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싸우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에게 계속 반역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사람이 하나님과 싸우는가? 그것은 죄의 행위를 따르는 것을 말한다. 고의로 죄의 행위에 빠진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평강의 하나님이시다. 그리스도는 그의 제자들에게 평강을 주고 가셨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의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골3:15). 하늘에서 하나님과 그의 사랑하는 아들 간에 ‘평화의 의논’(슥6:13)이 있었다. 인간의 평화를 위하여 의논하신 것이다. 인간이 그 평화를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하나님에게 무조건 복종 곧 완전히 복종하는 것이다. 그리하면 감정이야 어떻든 간에 마음에 평강이 있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만일 들었더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 네 의가 바다 물결 같았은 것이며’(시119:165,사48:18) 이 말씀에 얼마나 큰 위로가 있는가를 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13:8) 그러므로 그의 평강은 끊임없이 흐르는 강이나 계속 구르는 바다의 파도와 같다. 그러므로 평강은 감정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 모든 죄를 자백했다면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셔서 이 모든 죄를 용서하시며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화평을 가진다. 평강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을 조건으로 한다.
‘또한 그(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과분한 용서와 은총)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사실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부모에게서 이삭을 낳게 한 그같은 능력으로 의가 매일매일 인간 안에서 역사할 수 있다. 일단 이러한 의의 경험을 얻을 때에 다음에 있는 주의 재림의 소망 가운데서 즐거워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얼마나 흔히 우리는 주의 오심을 두려움 가운데서 고대하고 있는가? 현재의 생활 가운데서 주님을 기뻐하는 생애를 살지 않는다면 앞으로 올 생애에서 주님을 기뻐할 소망이 없다. 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해야 하는가? 그것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왔느니라’(눅21:28)는 명령이 모든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도들에게 주어졌다. 그가 곧 오시는 것 때문에 감사하자. 이것은 우리에게 있는 가장 영광스럽고 환희에 찬 약속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현재에 살고 미래에 살지 않는다. 베드로전서 1장 5절로 9절을 읽어보기 바란다. 구원은 장차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우리의 것이다. 우리 자신 외에는 아무도 이 구원을 우리로부터 빼앗아 갈 수 없다. 베드로는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현재) 받음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현재 받은 구원은 미래의 구원에 대한 유일한 소망이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라는 말씀은 베드로가 말한 말씀이며 이것은 로마서 5장에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이라는 말씀과 같은 상태를 간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앞으로 올 생애에서 우리를 불멸의 존재로 만들 그같은 능력이 지금 우리를 의롭게 만든다. 다시 말하면 그와같은 능력을 힘입어 우리가 매일 율법과 조화를 이루고 율법에 순종하는 생애를 살게 된다. 바울은 빌립보서 3장 21절에서 이런 말씀을 했다.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에베소서 3장 16절에서 바울은 간절한 기도를 한다.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영광과 같다. 하나님의 보좌는 영광의 보좌이므로 우리가 서 있는 은혜는 하나님의 영광의 후광을 받고 있다.
“우리가 환란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이루는 줄 앎이로다.”
어떤 사람은 환난이 성급함을 이룬다고 말한다. 이 말은 사실이 아니다. 사람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지 않으면 환난은 그 사람 안에 있는 성급함을 계발시킬 것이다. 그러면 환난이 인내를 이룬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다음 성경절이 그 답을 줄 것이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벧전5:7)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시55:22)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주님께서 우리의 무거운 짐을 가져 가신다. 그 짐은 무엇인가? 우리를 염려하게 만들고 괴롭히는 것들이다. 그 짐이 작고 사소한 것이든 큰 것이든 문제가 아니다. 주님에게 맡겨 버리라.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의 모든 짐을 맡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환난 중에도 즐거워한다. 그리스도는 모든 짐을 지실 수 있다. 이미 모든 세상 사람들의 짐을 지셨으므로 우리가 그분에게 더 지울 것이 없다.
어떻게 무거운 짐들을 없앨 수 있는가? 그리스도에게 맡겨 버리고 ‘그가 내 짐을 다 지셨다’고 말하라. 우리가 어떻게 느끼던 상관없이 다 지신다.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는 진리의 말씀에 체험을 할 것이다. 여전히 육체적 고통이 몸을 괴롭힌다 하더라도 안식을 얻는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그 모든 환난을 맡으셨고 우리는 모든 고통을 초월하여 높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여 순교자들이 즐거운 찬미를 부르면서 고문대나 화형주로 나아갔는가? 그것은 그저 허세를 부리는 것이었는가? 아니다. 그리스도가 그들의 짐을 지고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평강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쁨이 충만한 마음에서 그들은 찬미를 불렀다. 이와같이 그들은 불속에 휩싸이면서도 행복하고 즐거워했으며 고통을 몰랐었다. 우리는 큰 환난을 통과해야 할 것이다. 그 환난은 벌거벗긴 몸에 채찍질하거나 엄지 손가락을 형틀에 넣고 트는 것일 수도 있다. 인간의 본성은 이러한 고문을 싫어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견디어 낼 수 있다. 지금 그리스도를 얻는 체험을 하라. 그러면 그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그리스도는 크고 작은 모든 짐을 지실 것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그리스도는 우리의 것이므로 우리의 생명은 그 안에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의 어떤 사람도 미리 믿음의 도를 터득하지 않는다면 그때에 가서는 설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이 도를 배울 수 있는 평화스러운 때이다. 그때의 환난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즐거운 마음으로 통과할 것이다. 그 즐거움을 지금 배워야 한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4). 인내는 우리가 완전한 사람인 것을 보여준다.
‘인내는 연단’을 이룬다. 여기서 말한 인내는 그리스도인의 체험이다. ‘연단’은 이 체험을 가진 사람들이 시험과 확증을 받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들은 하나님을 붙들고 확증하였다. 연단 곧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을 확증하면 매일 소망이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바라는 것을 기대할 이유가 있게 된다. 우리가 현재 구원을 가지므로 영원한 구원을 바라보고 즐거워한다. 5장은 참으로 소망과 즐거움의 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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