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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의 보물 
복음의 보물(1980년판) 복음의 보물(1980년판)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연구시리즈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연구시리즈 
믿음에 대한 정의를 내립니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E. J. 와그너 목사는 원래 직업이 의사이었으며 그의 아버지는 복음을 전하는 목사이었다. 그는 성경을 깊이 연구하는 학생이었는데 개인의 구원에 관한 깊은 고뇌에 빠지게 되었다.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를 깊이 고민하던 중 어떤 영적 집회에서 홀로 앉아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하늘이 열리며 예수님의 십자가가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고 그의 고백가운은 증언한다. 그 후 그는 십자가를 연구하게 되었으며 깊이 있는 성경 연구를 통해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얻는다는 놀라운 진리를 깨닫고 의사 직업을 버리고 복음을 전하는 목사로 헌신하게 되었다.
여기에 올리는 주석은 와그너의 로마서 강해를 번역한 것으로 매격월간 출간되는 진리의 기둥과 터에 시리즈로 연재되고 있다. 로마서 강해 (E. J. 와그너) 
 갈라디아서연구 
 히브리서 연구 (A. T. 존스) 
주옥같은 구원의 설교들을 모아 놓은 곳입니다. 구원의 설교 
주님이 사랑하십니다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로마서 5장 6-9절) ModifyDelete


로마서 5장6-9절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사람은 그 연구를 통하여 오로지 하나님에게 더 가까이 나아가려는 굳은 뜻을 마음에 가져야 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고 마음을 보신다. 하나님에게 구하는 사람에게 누구를 막론하고 그의 성령을 주셔서 모든 사람들에게 성경의 진리들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실려고 한다. 설교를 들을 때에 빛과 평강이 우리의 마음에 임할 수 있지만 만일 우리가 스스로 그 말씀을 연구하지 않으면 그 평강과 빛은 우리에게 머물러 있지 않을 것이다. 성령이 성경의 말씀들을 기록하게 하셨으므로 성령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말씀을 깨달을 수 없다. 성령에게 복종하려는 사람은 누구나 성경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성경 연구를 진정으로 도울 수 있는 분은 성령 밖에 없다. 다른 사람의 저서로부터 그리스도와 그 사업에 대해서 안다면 그것은 직접 듣고 아는 것이 아니다. 성경으로부터 직접 빛을 받아야 한다. 성령으로부터 직접 성경을 배우라. 그 말씀이 별로 귀하게 보이지 않을지라도 우리의 마음에 성령의 밝은 빛을 받을 때에 그 말씀 속에는 높고 깊고 오묘한 뜻이 드러나 있어 마음에 감탄을 금치 못할 것이다. 우리가 영원 무궁토록 구속의 경륜을 연구할 것이며 연구하면 할수록 연구할 것을 더욱 많이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어제 저녁에 5장5절까지 연구하고 끝마쳤다. 오늘 저녁에는 6절부터 시작하도록 하겠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연약할 때에’라는 말을 유의하라. 그리스도가 갈바리의 십자가에서 제물로 바쳐졌을 때에 세계 역사에 정해진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만이 경건치 않은 자에게 그리스도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경건치 않은 자는 누구인가?
그들은 ‘연약할 때’에 있는 자들이다. 온 인류는 타락한 이후에 연약하게 되었으며 오늘날에도 연약하다. 사람은 자신이 연약함을 발견할 때에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만민을 자기에게 이끄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에 죽고 다시 부활하신 구세주를 제자들과 같이 오늘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때때로 우리는 뒤돌아 보며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부조와 선지자들은 앞을 바라보면서 그리스도를 기다렸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런가? 우리도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있으며 그들도 그리스도를 바라보았다. 우리도 그리스도를 우리 곁에 계신 사랑의 구주로 바라보고 그들도 마찬가지로 바라보았다.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했다.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사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이 아니요...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와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신30:12,14).
그리스도 우리 구세주이신 말씀이 그들에게 가까이 계신 것같이 우리에게도 가까이 계신다. 그들은 모두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며 그 반석은 그리스도이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리스도를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그리스도가 그들 가까이 계셨었다. 그는 창세 전에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셨다. 그리스도를 영접한 모든 사람들에게는 지금이나 과거에나 언제나 현재의 구세주이시다. 아벨에게도 현재의 구세주이셨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림으로 ‘무엇을 믿었는가?(히11:4). 하나님의 아들을 믿었다. 그가 믿을 수 있는 다른 분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에녹도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동행하였다. 그는 구세주의 도움을 받기 위하여 미래의 어느 때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리스도는 에녹에게 현재의 구세주이었으므로 그리스도와 에녹은 항상 함께 동행하였다.
이와같이 과거 모든 시대에 걸쳐 사람들이 자신의 연약함을 깨달았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구세주가 되셨다. 6절의 말씀이 이 사실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것을 유의하기 바란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아벨이 연약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그를 위하여 죽으셨다. 에녹이 연약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그를 위하여 죽으셨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연약했을 때에 그들을 위해 죽으셨다. 그분의 죽음은 이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의 실재하는 사실이었다. 그리스도는 아브라함에게 엄청난 능력이 되셨다. 그리스도 곧 메시야가 아직 오시지 않았지만 아브라함을 통하여 오실 예정이었다. 바로 그 메시야는 엄청난 능력을 가지셨기 때문에 아브라함과 사라가 그를 믿었을 때에 아들을 낳았으며 그 아들을 통하여 메시야가 오시게 되었다. 지상 역사의 모든 순간에 그리스도는 연약한 자들에게 현재의 구세주가 되셨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의인’을 의미하는 원어는 ‘선인’으로 번역된 말과는 다르다. 여기서 ‘의인’이라는 말은 아주 정직하고 강직하나 자기 주위에 특별히 사랑할만한 것을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런 사람을 위해서는 죽는 자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선인 곧 친절하고 자비스러워서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바쳐서 가난한 사람을 먹이고 벌거벗은 자를 입히는 이런 사람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간혹 있다. 이것은 인간의 사랑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봉이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15:13).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보라.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도 자주 하나님과 그의 사랑을 우리 자신과 우리의 사랑을 기준하여 생각할 때가 많다. 주님은 다윗을 통하여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시50:21). 거듭나지 못한 마음은 대접받은 대로 남을 대접하려고 하며 자기의 표준으로 하나님을 판단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사랑과는 전혀 달라서 원수까지 사랑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은 얼마나 놀라웁고 비할데 없는 사랑이며,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 가운데 나타난 그 사랑은 얼마나 넓고 컸던가! 하나님의 손에서 사랑을 받기 위하여 세상은 무슨 일을 하였던가? 그들은 하나님의 원수들과 손을 잡았을 뿐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형벌을 받아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영접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스도인이 된지 수년이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내가 감당할 수 없나이다.’라고 말하기 때문에 풍성한 그리스도인의 은혜를 받지 못하는 자들이 많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들은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의 사랑을 받으라고 권하셨다. 왜 그리스도는 죽으셨는가? 우리로 하여금 받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케 되도록 하기 위해서 였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케 되도록 하기 위해서 였다.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있는 문제점은 그들이 전혀 받을만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만일 그들이 연약하다는 것을 느낀다면 그리스도의 능력을 받을 수 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고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과 평강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은 성경을 믿는데에 있다. 성경을 믿노라고 공언하는 것과 성경의 모든 말씀을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우리 각 사람에게 직접 말씀하신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다르다.
디모데전서 1장 15절에서 바울은 말한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분명히 그가 오신 목적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였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요19:10). 오, 사람들이 연약하다는 것을 깨닫기 바란다. 그들이 연약함을 깨닫게 될 때에 비로소 그리스도의 능력을 받을 수 있다. 이 능력은 어떤 무엇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능력이다. 이 능력을 통하여 모든 것을 받게 된다.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들을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을 믿는 것은 위대한 일이다. 때때로 천국이 천정에 깔린 무감각한 철판같이 생각되어 실망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으며 우리가 행하고 말하는 모든 것이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처럼 되돌아 오는 것같이 보일때가 있다. 우리의 기도가 머리 위로 올라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런 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나님에게 감사해야 한다. ‘무엇 때문에 감사하는가? 아무런 축복을 받지 못하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데 무엇 때문에 감사한다는 말인가?
그리스도가 죄인을 위해서 돌아가셨다는 것 때문에 하나님에게 감사하라. 이것이 처음에 실감이 안되면 이 말씀을 되풀이하고 또 되풀이하여 주장하라. 그러면 곧 마음에 빛이 비치며 우리는 죄인 중의 하나임을 느낀다. 그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약속이 우리의 것이 된다.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무릎을 꿇고 그리스도 앞에 나아간다. 그러면 우리는 그분의 죽음의 혜택을 받는다. 그의 죽음의 혜택은 무엇인가.
‘이제 우리가 그의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곧 우리가 원수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가 영영히 돌아가신 것처럼 행동하고 말한다. 그렇다. 죽이시기는 했지만 그러나 다시 부활하여 영원히 살아계신다. 그리스도는 지금 요셉의 새 무덤에 계시지 않는다. 부활하신 구세주가 우리에게 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에게 무슨 일을 이루어 놓았는가?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만들어 놓았다.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되었다. 의로운 분으로 불의한 자를 대신하여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에게 나아가게 되었다. 이제 보자.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데려다 준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이었다. 그러면 우리를 그곳에 붙들어 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살으심)이다. 우리가 그의 생명(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받는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라.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왜 그리스도의 생명을 주셨는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그리스도가 그의 생명을 주신 것은 우리가 생명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 생명은 어디에 있는가? 그 생명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생명을 어디서 얻을 수 있는가? 요한복음 1장 4절을 읽어 보자.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그리스도만이 생명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이 생명을 받으려고 하는 자는 누구에게나 주신다. 그리스도는 생명을 가지고 계시며 이 생명을 소유하신 유일한 분이다. 그리고 이 생명을 우리에게 주기를 기뻐하신다. 그러면 이 생명은 무엇인가?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라.’(요17:3).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은 영생을 가지는가? 그렇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 3장36절에서 거듭 말한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이 말씀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우리가 영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않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요일3:14,15).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머지않아 영생을 가지게 될 것을 안다.’고 말한다. 그렇다. 틀림없는 말이기는 하지만 보다 틀림없는 말은 지금 영생을 얻는다는 말이다. 이것은 한낱 이론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다. 예를 들어 보자 여기에 두 형제가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같다. 그러나 하나는 그리스도인이고 하나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인 형제는 겉으로는 나타나지 않지만 다른 형제가 안 가지고 있는 생명을 가지고 있으며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갔으나 다른 형제는 사망에 그대로 남아 있다. 그리스도인 형제는 다른 형제가 안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영생이다. 다른 형젱의 마음 속에 영생이 거하지 않는다면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않는다’는 말씀은 무의미한 말이 아니다.
요한일서 5장 10절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거짓말하실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지 않다고 말할 때에 우리 자신을 거짓말하는 사람으로 만든다. 지금 이 성경 말씀에 의하면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씀하신 증거를 믿지 않으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분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이러한 혐의- 이러한 증거를 믿지 않고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분으로 만드는 혐의에서 완전히 벗어나려면 믿어야 한다. 다음 절에서 이것을 설명하고 있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어떤 사람들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곧 이러한 영생에 관한 사상 때문에 사람들이 계명을 지키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그러나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사람 곧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계명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으므로 만일 우리가 믿음의 사람이 아니라고한다면 하나님은 거짓말하는 분으로 만든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거짓 증거하여 계명을 범하기 때문이다. 방금 인용한 구절에서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혐의를 벗기기 위하여 믿어야 한다고 들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주신 것을 믿어야 한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아들이 있으면 영생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에 들어오신다. 그러면 죽은 그리스도가 마음에 들어오시는가? 아니다. 그는 살아계시므로 생명에서 분리될 수가 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실 때에 생명을 얻는다. 그리스도가 마음 속에 들어오실 때에 그 생명이 들어온다. 영생을 가진 사람이 되도록 해 주신 하나님에게 얼마나 감사해야 할 줄 모르겠다.
예수께서 베다니에 가셨을 때에 마르다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갔다고 이미 말한 바 있다. 어떻게 그렇게 되는가? 부활에 의해서만 그렇게 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부활하여 새 생명에 이른다. 다음의 말씀을 유의하여 보라. 바울은 그리스도와 그의 ‘부활의 권능’을 알기 위하여 기도했다. 그러면 부활의 권능은 무엇인가? 에베소서 2장 4절로 7절에서 바울은 말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이렇게 살리시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 우리가 죽어 있었으나 우리를 살리시고 일으키셔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서 앉아 있도록 하셨다. 오늘 우리는 영생을 가져야 하고 또 영생을 가질 수 있다. 그리하여야 그리스도가 오실 때에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킨 그같은 능력으로 우리의 죽을 몸도 변화시킬 것이다. 지금 우리의 마음이 변화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마음에 들어와 거하지 않으면 변화될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마음에 계실 때에, 우리가 그리스도의 생애를 살 수 없고 그가 오실 때에 우리로부터 영광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가 세상에 계셨을 때에 천사들의 옹위와 영광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는 그리스도이셨다. 슬픔의 사람이였을 때에도 그는 그리스도이셨다. 그후 승천하셨을 때에 그리스도에게서 영광이 나타났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그리스도가 우리의 마음 속에 계셔야 한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의 몸을 변화시킬 때에 영광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주셨다(요10:10,11). 그에게 있는 모든 것을 주셨다. 그것은 무엇이었는가? 그의 생명이다. 그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주셨다(갈1:3,4).그의 살으심은 우리가 구원을 받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며 이 악한 현 세대의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신다. 이것은 하나의 거래이다. 그는 우리의 죄의 값으로 그의 생명을 지불하셨다. 그러면 누구를 위해서 그의 생명을 드렸는가? 죄에 굴복한 사람들에게 생명을 다시 주기 위해서 생명을 바치셨다. 우리에게 죄가 있는가? 만일 죄가 있다면 우리의 죄를 그리스도의 생명과 교환할 수 있다.
히브리서 5장 2절에서 대제사장의 일은 자비의 일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구세주께서 지상에 계실 때에 제사장의 이름을 지녔던 사람들은 진정한 제사장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비가 없었고 악하고 탐욕적인 사람들이었다. 강도의 약탈을 당하고 길가에 넘어진 사람을 보고도 옆으로 비켜 간 사람들이었다. 그리스도는 자비를 가지셨다.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히2:17).
그리스도의 자비가 무슨 일을 해 주는가? 우리에게 능력을 주신다. 그리스도의 자비가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되는가? 그리스도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이 능력임을 아신다.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하며 언제 필요하며 어떻게 필요한가를 아신다. 그러므로 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일은 오직 한일 곧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는 일이다. 그리스도의 제사장짓의 능력은 무엇인가? ‘그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지 아니하고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것이라.’(히7:16). 이 능력은 우리가 그를 믿는 오늘 이 시간에 그리스도께서 여러분과 나를 죄로부터 구원하시는 능력이다.
그리스도는 지상에 오시기 전부터 영원하신 하나님이셨다. 신성의 본질은 무엇인가? 생명이다. 그리스도꼐서 영원하신 분이므로 생명을 가지고 계셨다면 어떻게 죽을 수 있었는가?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그것은 비밀이다. 그러나 기쁜 것은 아무도 손댈 수 없는 생명을 가진 분이 우리를 위해서 죽으셔서 모든 원수의 공격을 무너뜨리는 데에 성공하였다는 것이다. 그때에 이와같이 능력이 충만하기 때문에 자기의 생명을 버리려 하지 않았다면 아무도 그의 생명을 빼앗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서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니라.’(행2:24). 사망이 그리스도를 붙들 수가 없었다. 그에게는 사망을 거부하는 생명의 능력이 있었다. 자신의 생명을 버리고 사망을 취하신 것은 사망을 지배하는 그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사망을 거부하고 즉시 사망의 영역 곧 무덤에 들어 가셔서 사망을 지배하는 권세를 가지고 계심을 보여 주었다. 그리스도는 그의 생명을 버리셨으나 때가 이르렀을 때에 다시 생명을 취하셨다.
왜 사망이 그를 붙들 수 없었는가? 죄가 없었기 때문이다. 죄가 그를 지배하려고 총력을 기울였지만 조금도 그에게 상처를 줄 수가 없었다. 그의 품성에 하나의 흠도 낼 수가 없었다. 그의 생애는 무죄한 생애였다. 그러므로 무덤도 그를 지배할 능력이 없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을 때에 그와 똑같은 능력을 소유한다. 여기에 승리가 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을 때에 그 능력을 가질 수 있다. 우리의 죄들을 주님에게 드리고 그 대신 그의 죄없는 생명을 받으라. 그는 죄의 값으로 그의 생명을 드렸는데 왜 이미 값을 지불한 것을 받으려 하지 않는가? 우리가 죄를 원치 않는다면 생명이 매우 귀중하게 여겨질 것이다. 이 생명은 우리의 마음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 채울 것이다. 그의 보혈로 화목하게 되었으므로 이제 그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도록 하자.
그리스도의 생명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시험을 받을 때에라도 승리는 이미 얻은 것이다.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거할 때에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으므로 그의 생명이 우리 안에 거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생명으로 모든 죄를 이기고 승리하셨던 것같이 시험이 오기 전에 승리는 이미 우리의 것이다. 사단이 와서 시험할 때에 그에게는 아무런 능력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 생명이 항상 우리를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오, 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고 우리가 그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의인이 믿음으로 사는 것은 그리스도가 그들 안에 살고 계시기 때문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니라.”(갈2:20).
그렇다. 그리스도가 죽음에서 일어나셨으므로 우리도 그와 함께 살아났다. 그러나 우리는 육체를 지니고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육체를 지니고 계실 때에 그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었듯이 육체를 지닌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생명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일들을 이해할 수는 없다. 이것은 복음의 신비이다. 하늘이 인간을 위해서 한 모든 일이 하나의 신비이다. 한번은 혈류병을 앓고 있는 여인이 있었다. 그 여자가 수 많은 군중 가운데서 주님의 옷자락을 만졌다. 즉시 그리스도께서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라고 말씀하셨다(눅8:46). 여자는 중병이 걸렸었는데 주님의 옷자락을 만지자 정말로 병이 나았다. 무엇이 그 여자의 병을 낫게 해 주었는가? 예수로부터 나와서 여자에게 들어가 병을 치료해 준 실제의 능력이 낫게 해 주었다.
이러한 이적은 우리를 위해서 기록하였다. 왜 기록하였다고?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1). 예수께서부터 나가서 여자의 몸을 치료한 그와 같을 생명과 능력이 나가서 그 여자의 마음을 치료하였다. 오늘도 예소는 이와같은 일을 하려고 고대하고 계신다. 이러한 일들을 기록한 목적은 사람의 몸에 들어가서 낫게 해준 그 같은 하나님의 능력과 생명이 믿는 자들의 마음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 생명을 마음에 받아들이면 원수의 모든 유혹과 시험을 물리칠 수 있다.
죄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생명은 죄없는 생명이며 이 유일한 죄없는 생애는 하나님의 아들의 생애이다. 우리들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죄없는 생애를 살려고 투쟁하여 왔는가? 그러한 투쟁은 틀림없이 실패하는 싸움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으면 우리는 죄없는 생애를 산다. 이런 엄청난 선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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